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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월드랠리챔피언십(World Rally Championship, WRC)은 시즌 막바지에 결정된 캘린더 변화로 인해 최종전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 랠리가 취소되고 제13전 이탈리아 사르데냐 랠리가 마지막 레이스가 되었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사람은 역시나 포인트 리더 엘핀 에반스(Elfyn Evans)를 추격 중인 사미 파야리(Sami Pajari)와 올리버 솔베르그(Oliver Solberg)다. 최근 두 경기에서 각기 우승을 차지하며 에반스와의 점수 차를 좁혀왔던 두 사람인데, 남은 경기가 하나 줄어들어 버림에 따라 단 한 판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에반스는 파야리와 17점, 솔베르그와는 21점 차이라, 득점권에서 완주만 한다면 타이틀 획득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졌다.
WRC 프로모터인 에릭 부이에(Éric Boullier)는 이번 결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랠리 파트너들이 올해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과 헌신을 고려할 때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지역 정세 변화와 그로 인한 물류상의 어려움을 감안하면 남은 일정을 명확하게 정리해야 했습니다.”
갑작스레 최종전의 무대가 된 올해의 이탈리아 사르데냐 랠리는 지난해의 올비아(Olbia)가 아니라 유서 깊은 해안도시 알게로(Alghero)로 돌아왔다. 지중해에 인접한 해안도로는 물론 고대 요새 아래를 통과하는 스테이지도 마련되었다. 사르데냐 랠리는 초여름의 무더위와 섬의 거친 노면으로 대표된다. 하지만 올해는 개최 시기가 미루어져 가을에 열린다.
사실 사르데냐 랠리가 가을에 열리는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과 2012년 그리고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에 이어 4번째 가을 경기다. 10월에 열리는 사르데냐 랠리는 기온이 낮아지는 대신 경기 조건은 변덕스러워져 복잡한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타이어 마모는 여전히 극심하고 랠리카의 내구성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만큼 한순간의 방심으로 모든 것을 망칠 수 있다. 2024년에는 당시 현대 월드랠리팀(이하 현대팀) 소속이던 오트 타낙(Ott Tänak)이 세바스티엥 오지에(Sébastien Ogier)와 0.2초 차이로 우승을 차지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역사상 가장 치열한 접전 중 하나였다.
거친 섬의 산악도로는 좁고 험준하다. 구불거리는 비포장길은 끊임없이 리듬이 변하고 시야도 좋지 않다. 더운 날씨에는 체력 소모가 심하고, 비가 내릴 경우에는 배수가 잘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변이 자주 발생한다. 상위권 선수들의 탈락 덕분에 WRC2 클래스가 종합 5위권에 드는 일도 드물지 않다. 빠르지만 상황에 따라 전략적인 선택을 할 줄 알아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캘린더 가운데 타이어 소모가 가장 극심한 경기인 만큼, FIA는 이번에도 타이어 관련 특별 규칙을 도입했다. 파라과이에서 타이어 펑크와 박리 현상 때문에 혼란이 벌어짐에 따라 칠레에서 랠리1 클래스의 타이어 사용 한도를 28개에서 36대로 늘린 바 있다. 이번 최종전에는 하드 28개, 소프트 16개로 합계 44개까지 사용할 수 있어 타이어 때문에 타이틀이 결정되는 사태는 미연에 방지했다.
현대팀에서는 티에리 누빌(Thierry Neuville)과 아드리안 포모(Adrien Fourmaux) 그리고 스페인 출신의 다니 소르도(Dani Sordo)를 엔트리했다. 사르데냐는 전통적으로 현대팀이 강세를 보여왔던 무대로 2016년 이후 지금까지 단 3번을 제외하고 모든 우승컵을 차지해 왔다.
누빌은 2016년과 2018년 그리고 2023년 우승자다. “사르데냐는 랠리1 시대의 마지막 이벤트이기 때문에 우리의 목표는 당연히 우승을 다투는 것입니다. 과거에 승리했던 이벤트인 만큼 자신감을 갖고 빨리 달리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사전 테스트에서 잘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지난 사르데나 랠리보다 날씨가 선선하고 타이어 관리가 중요할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특히 랠리1 차량은 WRC 역사상 가장 경쟁력 높은 머신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대를 우승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한편 포모는 이번 시즌 현대팀에서 가장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우승은 없지만 케냐에서의 2위를 포함해 포디엄에 4번 올라 현재 포인트 랭킹 5위다. “사르데냐에서는 언제나 빨랐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좋은 결과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그런 흐름을 바꾸고 싶어요. 10월 개최라는 점에서 차이가 생길지도 모르죠. 가혹한 랠리니까 주말 내내 모든 것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라며 의욕을 드러냈다.
소르도는 2019년과 2020년 사르데냐에서 우승컵을 차지한 바 있다. 다만 올 시즌 랠리1 복귀 후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슬라스 카나리아스에서 7위, 포르투갈에서 8위였고, 그리스에서는 최종 스테이지 직전에 전술적 이유로 리타이어해야 했다.
소르도는 이번 경기에서 코드라이버 칸디도 카레라(Cándido Carrera) 대신 파트리샤 사이즈(Patricia Sáiz)에게 출전 기회를 제공하기로 했다. 스페인 출신인 사이즈는 아직 WRC 출전 경험이 없는 신예로 지난해 벨기에 이프르 등 몇몇 내셔널 이벤트에서 소르도와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소르도는 이번 경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랠리 이탈리아 사르데냐 최대의 난관은 좁은 길에 있는 돌입니다. 정확성과 스피드가 요구되며, 조금이라도 실수를 하면 반드시 어딘가에 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파트리샤를 코드라이버로 맞이했습니다. 지금까지 여러 번 함께 달려왔기 때문에 사르데냐에서도 좋은 결과를 남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편 이번 경기 출전을 통해 소르도는 카를로스 사인츠(Carlos Sainz)를 제치고 WRC 역대 최다 출전 기록 단독 3위(197회)로 올라서게 된다.
이미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을 확정 지은 토요타는 이번 최종전에서 3명의 소속 드라이버가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을 놓고 경쟁을 벌였다. 에반스가 포인트 리더이고 사미 파야리와 올리버 솔베르그도 가능성이 남아 있다. 반면 오지에는 핀란드에서의 리타이어와 파라과이 부진으로 막판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여기에 다카모토 가츠타(Takamoto Katsuta)까지 5명의 드라이버를 엔트리했다.
에반스는 230점으로 포인트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파야리가 213점, 솔베르그는 209점이다. 한 경기에서 챙길 수 있는 최대 포인트는 35점(1위 25점, 슈퍼 선데이 5점, 파워 스테이지 5점)이다. 하지만 에반스가 리타이어해 득점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챔피언 가능성은 가장 높다. 에반스가 19점 이상을 획득한다면 나머지 선수들의 성적과 상관 없이 자력으로 타이틀을 확정하게 된다.
M-스포트 포드에서는 조쉬 맥켈런(Josh McErlean), 존 암스트롱(Jon Armstrong) 그리고 마르틴 세스크스(Mārtiņš Sesks)까지 3대의 포드 퓨마를 준비했다. 포드는 최근 제조사 팩토리팀으로 2028년 WRC에 돌아온다고 공식 발표해 랠리 팬들을 흥분시켰다. 현재는 M-스포트에 의한 세미 팩토리 성격이며, 16년 만의 팩토리팀 복귀인 셈이다.
내년에는 일단 랠리2 차량의 업그레이드 패키지로 참가를 이어가고, 2028년부터 공식 팩토리팀 체제로 승격한다. 신차 개발과 팀 운영 등 M-스포트와의 강력한 파트너십 관계는 계속 이어진다. 완전 신형 랠리카는 2029년에 선보이게 된다. 2029년에는 파워트레인 전면 자유화 등 많은 변화가 예정되어 있다. 내연기관과 하이브리드, 수소차, EV 등 무엇이든 가능하며 토크 미터를 도입해 동력을 실시간 측정하고 성능을 균등하게 맞추게 된다.
10월 1일 목요일 오전, 알게로 서쪽에 마련된 3.27km 스테이지에서 셰이크다운 테스트를 마친 참가자들은 오후 4시 5분, SSS1 이티리 아레나 쇼(Ittiri Arena Show) 스테이지에서 최종전 사르데냐 랠리를 시작했다. 랠리크로스 경기장에 마련된 2.21km의 코스는 2대의 차량이 동시에 출발하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진행으로 경기 초반 분위기를 뜨겁게 달구었다. 사르데냐 랠리에서는 2019년 이래 오랜만에 보는 사이드 바이 사이드 방식이었다.
솔베르그가 톱타임으로 첫날 선두에 섰고 오지에, 에반스, 파야리, 누빌, 소르도가 차례로 뒤를 이었다. 포모는 8위로 첫날을 마쳤다. 소르도는 셰이크다운에서 코스 이탈 후 TC(Time Control)에 늦게 도착해 10초 페널티를 받은 후 SSS1 출발 지연으로 다시 10초 페널티를 받았다.
10월 2일 금요일은 동쪽으로 이동해 본격적으로 거친 길을 공략했다. 18.77km의 오프닝 툴라-에룰라(Tula-Erula)는 풍력발전기 주변을 지나는 독특한 풍경이 특징이다. 금요일은 오전 3개 스테이지를 오후에도 반복해 달리는 SS2~SS7 6개 스테이지 합산 119.66km 구간에서 경기를 치렀다. 타이어는 많은 선수들이 소프트 5개를 준비한 반면 솔베르그는 안전하게 소프트 스페어 하나를 더 실었다. 암스트롱과 세스크스는 하드 4개, 소프트 2개, 맥켈런은 하드 2개, 소프트 4개였다. 팀에서 선수들에게 신품 타이어를 전달할 수 있는 타이어 교환 지점이 5곳이나 마련되었다.
SS2 툴라-에룰라는 초반에 매우 거칠고 비좁으며 구불거리는 노면에서 시작하지만 풍력 발전기 구역에 들어서면 시야가 탁 트이면서 점프와 크레스트가 반복되는 고속 구간으로 바뀐다. 중반부에는 다시 날카로운 바위가 많은 험로로 바뀌었다가 막판에는 내리막 숲길로 이어지는 매우 기술적인 스테이지다. 건조한 노면에서 흙먼지가 대량 발생하기 때문에 차량 간격은 4분으로 늘려 잡았다.
포모가 오프닝 톱타임을 잡았다. 그 뒤로 오지에, 파야리, 누빌 순이었다. 포모는 경기 직후 이렇게 말했다. “오늘 계획대로 진행하고 싶지만 무엇보다 즐겁게 달리면서 결과를 지켜보고 싶네요. 사실 오늘 코스는 쉽지 않고 정말 까다로운 코스였어요. 먼지 때문에 자신감도 떨어지고요. 그래도 깔끔하게 주행하고 시간을 줄여보려 노력했는데 만족합니다.”
솔베르그는 타이어 펑크 때문에 10초 넘게 손실을 보았다. 한편 WRC2의 파비오 슈바르츠(Fabio Schwarz)는 점프 후 착지에서 큰 충격을 받아 코드라이버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룹A와 월드랠리카 시대에 활약했던 독일 드라이버 아민 슈바르츠(Armin Schwarz)의 아들이다.
SS3 수 필리고수-레르노(Su Filigosu-Lerno)는 유서깊은 수 필리고수와 레르노 스테이지가 혼합된 형태다. 모래흙이 깔린 좁은 산길은 앞서 달리는 차들에게 엄청난 청소 역할을 강요한다. 이들이 도로 위를 쓸어내면 후발 주자들은 높아진 접지력의 덕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누빌이 가장 빠르고 솔베르그, 포모가 뒤를 이었다. SS2에서 종합 선두가 되었던 오지에가 타이어 펑크로 밀렸고, 포모가 종합 선두로 올라섰다. 누빌이 종합 2위로 현대 듀오가 원투를 차지했다. 누빌은 주행 직후 “깔끔한 스테이지였습니다. 사전 답사에서는 가장 어려운 스테이지였어요. 페이스 노트상으로는 조금 느렸는데 노면 상태가 일정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속도를 높였습니다. 노면이 더 울퉁불퉁하고 균일한 요철이 많아질수록 더 편하게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최대한 라인을 유지하려 노력했어요”라고 설명했다. 한편 소르도는 스테이지 초반 파손된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많은 시간을 잃었다.
SS4 몬티 디 알라-사 콘체다-레르노(Monti di Alà - Sa Conchedda - Lerno)는 금요일에 가장 긴 23.23km의 장거리 스테이지다. 고속과 기술적인 구간이 뒤섞여 있고, 암석 지대와 거친 자갈이 많기 때문에 페이스 조절과 타이어 관리가 매우 중요한 코스다. 오후에는 노면이 많이 파여 난이도가 급상승한다. 이번 스테이지를 앞두고 각 차량은 타이어 2개를 새 걸로 교체했다. 솔베르그가 가장 빨랐고 포모와 누빌도 3, 4번째 기록이었다. 종합 순위에서는 여전히 포모가 선두, 누빌이 2위였다.
점심 서비스 후 툴라-에룰라를 다시 달린 SS5. 포모와 누빌은 물론 소르도까지 1~3위 기록을 세우며 라이벌 토요타 세력을 앞질러 나갔다. 특히 소르도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스테이지는 까다롭긴 했지만 좋았어요. 그런데 실내가 너무 더웠어요. 어제 허리가 아파서 점프 구간에서는 무리하지 않았습니다. 팀이 1,2,3윌르 차지해 기쁩니다. 우리 팀은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낼 자격이 있습니다.”
SS6 수 필리고수-레르노는 오전보다 험난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누빌이 다시 톱타임 기록하며 종합 선두인 포모와의 시차를 4.7초로 좁혔다. “지금은 제 자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타이어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썼어요. 예상보다 타이어 마모가 심해서 조금 놀랐습니다. 다음 스테이지에서는 괜찮을 것 같습니다.”
SS7 시작 전에 다시 새 타이어 2개씩이 제공되었다. 금요일 마지막 스테이지에서 누빌이 연속 톱타임을 기록하며 종합 선두로 하루를 마감했다. 종합 2위가 된 포모와의 시차는 불과 0.4초다. 반면 소르도는 오전에 이어 또다시 악몽에 빠졌다. 스타트 10.5km 지점에서 수풀로 뛰어들어 콘크리트 기둥을 들이받고 리타이어했다.
한편 타이틀 경쟁 중인 토요타 3인방은 솔베르그가 3위, 파야리 5위, 에반스가 6위에 있었다. WRC2에서는 선두를 달리던 티무 수니넨(Teemu Suninen)이 타이어 펑크로 밀려나고 거스 그린스미스(Gus Greensmith)가 선두, 루페 코르호넨(Roope Korhonen)이 2위가 되었다. 에밀 린드홀름(Emil Lindholm)은 2위에서 3위로 밀려났다.
10월 3일 토요일은 SS8 레르노-사 콘체다-몬티 디 알라(Lerno - Sa Conchedda - Monti di Alà)에서 하루를 시작했다. 24km가 넘는 장거리 스테이지가 2개나 포함되어 있어 SS8~SS13의 6개 스테이지 합산 거리는 123.66km였다.
24.14km의 레르노-사 콘체다-몬티 디 알라 스테이지는 금요일의 SS4와 인접한 위치에 이름도 비슷하지만 실제 겹치는 부분은 그리 많지 않다. 주행 방향도 반대다. 이 스테이지의 특징은 사르데냐 랠리를 상징하는 미키스 점프(Mickey’s Jump) 구간으로, 엄청난 스피드로 도약한 뒤 내리막에서 착지하며 박진감 넘치는 광경을 연출한다. 착륙 직후 급코너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중에서의 자세 유지와 정확한 착지를 위한 정교한 컨트롤이 필수적이다.
누빌이 오프닝 톱타임을 차지하며 선두 위치를 고수했다. 반면 첫 우승을 노리는 팀 동료 포모는 왼쪽 앞 타이어가 터진 채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포모가 1분 이상 손해를 보면서 솔베르그와 오지에, 파야리가 한 계단씩 올라섰다.
소르도는 셰이크다운 테스트에서의 사고 이후 통증이 심해졌다. “이대로는 더 이상 주행할 수 없습니다. 정말 아파요.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마치 뼈가 부러지는 것 같습니다. 허리와 옆구리에 통증이 심합니다.” 결국 다음 스테이지를 포기하고 서비스 구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SS9 코일루나-로엘레(Coiluna - Loelle) 스테이지에도 유명한 점프(Coiluna Jump)가 포함되어 있다. 도로 폭이 상대적으로 넓은 고속 구간이 포함되어 있지만 길가에 숨어있는 거대한 암석과 스쳤다가는 곧바로 리타이어할 수 있는 위험한 스테이지다. 길이 24.83km로 이번 경기 중 가장 길다.
누빌이 흘러내리는 안경 때문에 고전하는 사이 솔베르그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따라붙었다. 이제 두 선수의 시차는 3.3초까지 좁혀졌다. 5위로 내려앉았던 포모는 파야리를 제치고 종합 4위로 올라섰다.
SS10 솔로르체(Solorche)는 파타다(Pattada) 지역에 추가된 신설 스테이지다. 산을 따라 오르는 오르막 구간이 스테이지 대부분을 차지하며, 축적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드라이버의 적응과 임기응변에 따라 기록이 갈리게 된다. 솔베르그가 연속 톱타임으로 종합 선두 자리에 올라섰다. 누빌이 2위로 밀리고 오지에, 포모 순이다.
누빌은 이렇게 말했다. “노면이 점점 더 미끄러워지고 있습니다. 모래도 많아져서 휠스핀이 계속돼요. 이번 스테이지는 잘 마무리한 것 같습니다. 비슷한 조건에서 좀 더 나은 주행 라인을 찾았으면 좋겠지만 전반적으로 솔베르그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쏟아부을 것이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지켜보겠습니다.” 오후 경기를 앞두고 세스크스가 스티어링 문제로 인해 리타이어를 결정했다.
오프닝 스테이지를 다시 달린 SS11에서 현대팀에 다시 한번 악몽이 닥쳤다. 출발 1.1km 지점에서 누빌이 코스를 이탈한 것이다. 승리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안타까운 리타이어였다. 오지에가 톱타임에 오르고 포모와 솔베르그가 그 뒤를 이었다. 종합 3위로 오른 포모는 팀의 유일한 생존자가 되었다. “지금은 오지에와 아주 좋은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를 따라잡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사르데냐에는 항상 변수가 많습니다. 누빌과 팀을 생각해서라도, 저는 계속 집중하겠습니다.”
현대팀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어진 SS12에서는 포모가 펑크난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종합 5위로 내려앉았다. 오늘만 2번째 펑크였다. 여전히 솔베르그가 종합 선두에 있고 오지에가 2위. 파야리와 에반스가 3, 4위로 올라섰다. 포모의 탈락으로 에반스의 챔피언 타이틀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맥켈런은 이전 스테이지에서의 충돌로 냉각 계통이 손상되어 과열과 싸워야 했다.
SS13 솔로르체에서는 포모가 가장 빨라 에반스를 제치고 종합 4위로 올라섰다. 포모는 경기 직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달릴 때의 페이스가 이 정도입니다. 이 타이어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네요. 전략적으로 주행하려 했지만 잘 안됐습니다. 4위보다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페이스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최소한 포디엄에는 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토요일을 마치는 시점에서 솔베르그가 종합 선두. 오지에가 2위였고 파야리, 포모, 에반스, 가츠타 순이었다. 지금까지의 페이스로 진행되면 에반스가 6점 차이로 챔피언이 되지만 내일은 보너스 포인트까지 걸려있는 만큼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WRC2에서는 코르호넨이 그린스미스를 밀어내고 선두가 되었다.
10월 4일 일요일은 오실로-테르구(Osilo - Tergu) 스테이지에서 시작해 비교적 단거리인 사사리-아르젠티에라(Sassari - Argentiera) 스테이지로 이어진다. 이 2개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구성으로 SS14~SS17 4개 스테이지 합산 61.62km 구간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렸다. 타이어 전략은 참가자마다 제각각이었다. 누빌과 세스크스는 소프트 6개를 골랐고 에반스와 오지에, 맥켈런은 소프트 3개, 하드 2개였다. 챔피언십 경쟁자인 파야리는 소프트 5개, 솔베르그는 소프트 4개에 하드 2개를 싣고 경기에 나섰다.
23.71km의 오실로 테르구는 2024년 이래 2년 만에 복귀하는 전통의 스테이지다. 단단한 흙길 위로 모래가 얇게 덮여 매우 미끄럽고, 구불거리는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내리는 리드미컬한 주행을 특징으로 한다.
노면 청소가 가장 안된 스테이지에 가장 먼저 주행을 시작한 맥켈런이 2.8km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솔베르그가 톱타임을 기록하며 슈퍼선데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섰다. 파야리와 포모가 그 뒤를 이었다. 포모는 이렇게 말했다. “스위핑*이란 게 무슨 뜻인지 모르신다면 이 스테이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노면 위쪽은 미끄러운 부분이 많지만 동시에 정말 재미있습니다. 넓은 구간은 모두 훌륭하고, 아래쪽은 접지력이 낮고 돌맹이가 많습니다. 타막 구간의 한 코너에서는 멋진 점프를 선보였습니다. 최고였어요.”
*스위핑(Sweeping): 표면에 흙이나 자갈이 많은 스테이지를 초반에 달리는 일. 초반 주행에서는 장애물을 청소하느라 속도를 내기 어렵다.
SS15 사사리-아르젠티에라에서는 잠시 후 벌어질 최종 파워 스테이지의 예행연습이 벌어졌다. 아름다운 지중해를 배경으로 거친 모래와 자갈이 깔린 내리막길을 질주한다. 길이 7.1km에 비교적 단순한 구성이지만 추가 득점이 걸린 만큼 모든 참가자가 차량 성능을 한계까지 쥐어짜는 짜릿한 질주를 벌인다. 5.46km의 헤어핀 코너 이후에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고, 마지막에는 해안을 따라 펼쳐진 여러 언덕을 지나 빠른 속도로 마무리된다.
이번에는 누빌이 어제의 울분을 씻어내듯 멋진 질주로 톱타임에 올랐다. “오늘은 결승선까지 달려서 그 스테이지를 즐기는 데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닌 건 처음인데, 재밌었습니다. 파워 스테이지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고, 부진했던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오프닝 스테이지를 다시 달리는 SS16에서 참가자들은 하드 타이어를 추가로 지급받았다. 험한 스테이지는 타이어 펑크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걱정대로 에반스가 오른쪽 앞 타이어를 교체하느라 차를 멈추어야 했다. 파야리가 톱타임에 서고 오지에, 솔베르그가 뒤를 이었다. 슈퍼선데이 점수까지 합산하면 에반스와 솔베르그의 잠정 점수 차이는 1점까지 좁혀졌다.
SS17 사사리-아르젠티에라에서 챔피언 타이틀을 건 마지막 질주가 시작되었다. 파워 스테이지를 가장 빨린 달린 것은 누빌이었다. 사르데냐 랠리 우승컵은 솔베르그가 가져갔지만 피니시를 앞두고 결정적인 실수를 저질러 추가 포인트에서 손해를 보았다.
결국 이번 시즌 드라이버즈 챔피언 타이틀의 주인공은 엘핀 에반스에게 돌아갔다. 웨일즈 출신으로 최초, 영국 출신으로는 95년 콜린 맥레이(Colin McRae), 2001년 리차드 번즈(Richard Burns) 이후 오랜만이다. 솔베르그와의 점수 차이는 단 5점에 불과했다. 오지에와 파야리가 포디엄을 채웠고 포모는 4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선두를 달리다 리타이어한 누빌은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말은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끝났으니 어쩔 수 없죠.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잠시 휴식이 필요합니다. 팀원들 덕분에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시즌을 마무리 지은 누빌은 경기장을 찾은 팬들에게 손을 흔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랠리1 시대의 막을 내린 WRC는 내년부터 완전히 새로운 WRC27 규정을 도입한다. 현행 랠리1 제조사 가운데서는 토요타만이 신차를 개발했고, 그밖에 프로젝트 랠리1이나 WRT 랠리1 스페인 같은 소규모 독립 컨스트럭터에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M-스포트 포드는 일단 랠리2 차량을 기반으로 업그레이드 패키지로 개발한 후, 다양한 엔진이 가능해지는 2028년부터 포드 팩토리팀으로 바뀐다고 밝혔다.
2027년 WRC 캘린더는 이번에도 개막전 몬테카를로를 시작으로 스웨덴, 사파리, 크로아티아, 이슬라스 카나리아스 등 많은 경기가 올해와 같은 순서로 진행된다. 다만 칠레가 미국으로 바뀌고, 이탈리아는 사르데냐섬을 떠나 로마로 개최지를 바꾼다. 포르투갈이 빠지지만 영국 랠리가 8년 만에 복귀해 랠리팬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개최지는 2019년의 웨일즈가 아니라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에버딘(Aberdeen)에서 열린다.
글. 이수진 (자동차 평론가)
1991년 마니아를 위한 국산 자동차 잡지 <카비전> 탄생에 잔뜩 달아올라 열심히 편지를 보냈다가 덜컥 인연이 닿아 자동차 기자를 시작했다.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편집장과 편집 위원을 역임했고, 지금은 자동차 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전기차와 커넥티드카, 자율주행 기술 같은 최신 트렌드를 열심히 소개하면서도 속으로는 기름 냄새 풍기는 내연기관이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는 ‘자동차 덕후’이기도 하다.